English / 한국어 / Español / Українська
ウクライナから日本へ:分断された世界における平和の再定義
ヴァレリー・トカチュク
人生が一様に流れないとき、「平和」という言葉はどんな意味を持つのだろうか。幼い頃から私にとって「平和」という言葉は、説明も証明も必要としない、軽くて当たり前のものだった。それはただそこにあった——空気や静寂のように、それがある間は気に留めないもの。だが時が経つにつれ、この言葉はそれほど軽くなくなった。私の世界は、他の多くの人と同じように、「以前」と「以後」に分かれてしまった。人生はどこでも同時に止まるわけではない。ほとんど変わらずに続いた人もいれば、突然断ち切られた人もいた。そのとき初めて、平和はすべての人に同じように存在するわけではないのかもしれない、と感じた。
私は、生活がまだ慣れ親しんだリズムを保っている場所にいた。コーヒーを飲みながら日本の漢字に線を引いていたときのことを覚えている。そのときの最大の関心事は、いつか文法を習得できるだろうかということだった——「問題」という言葉の定義が間もなく書き換えられるなど、想像もしていなかった。当時、私はますます日本とその文化に惹かれ、いつか富士山を見て、桜の花を眺められる日を夢見ていた。安定していて予測可能な人生だった。
しかし、その予測可能さは長くは続かなかった。世界が変わっていく様子を感じ、昨日の夢が突然厳しい現実とぶつかった。慣れ親しんだ日常や計画、安全という感覚でさえも、いつでも消えてしまうことがあると気づいた。
そのとき初めて、平和のバランスがいかに脆いかを考えるようになった。以前は安定していて当然のものに思えていたが、今や個々の人の判断によっていかに簡単に左右されるか、そしてその判断を適時に止めることがいかに難しいかが見えてきた。
この気づきは瞬時に訪れたわけでも、明確な言葉として形をなしたわけでもなかった。それはささいなことの中に現れた——仕事の合間に読むニュース、いつも返事があるとは限らないメッセージ、日常のふとした行動がもはや中立ではないという感覚。生活は続いていたが、自分の日常の計画よりもはるかに大きく、不安を孕んだ何かを背景に、この人生が展開されているのだとよく思うようになった。以前、平和はガラス窓のようなものだと思っていた——透明で、世界を見渡すことを可能にしてくれるもの。今やそのガラスにひびが入っている。まだ透かして見ることはできるが、常にひびを意識している。もはや単に景色を眺めているのではなく、ガラスそのものを見ながら、完全に砕け散る前にどれほどの圧力に耐えられるのかを思い巡らしている。
静寂もまた、違う感触を持つようになった。以前は平穏を意味していた——不穏なニュースも、抗議活動も、緊急事態もない状態。今は、静寂が必ずしも平和の証しではないと思うようになった。時にそれは、すべてが再び変わる前の、ただの間を意味するに過ぎない。
「今年のうちで最も良い瞬間かもしれない」と、周囲の世界が比較的安定していると感じるとき、よく思う。そういう瞬間、自分の人生をひときわ大切に感じる。しかし同時に、この脆い均衡を守ろうとしている——自分や近しい人を不安定にしかねないものを意識しながら、それを避け、あるいは回避できるよう助けながら。これを自分自身の責任として受け止めている。
同時に、この責任は必ずしも英雄的な姿を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多くの場合、それは絶え間ない緊張からくる疲弊として、あるいは平和が努力を必要としなかったあの気軽さにときどき戻りたいという気持ちとして現れる。だが、あの状態に完全には戻れないという事実こそが、おそらく最も重要な変化だ。平和の脆さへの気づきは、周囲が再び比較的静かになったときでさえ、それを忘れさせない。引きたいと思うときでも、関わり続けることを促す。
今ある程度穏やかな時期にいるという認識が、前に進む力を与えてくれる。一個人として世界全体に平和を築くことは私の手には余ることはわかっている。だが、自分の周囲の世界を少しだけ思いやり深く、少しだけ安全で人間らしい場所にすること——それは自分にできることだ。
平和が自明でなくなるとき、それはもはや個人の問題ではなくなる。個人の人生と、遠く離れた場所でなされる決定が結びつき、その連鎖における自分の役割をあらためて見直さざるを得なくなる。そのとき、平和への思いは内なる感覚の枠を超えて、責任の問いになる。
今日、私にとって平和はもはや状態でも保証でもない。それは、身近で起きていることへの絶え間ない気づき、そして自分の決断が他者にどう影響するかへの意識だ。平和が求めるのは安穏ではなく、存在することだ。そして、おそらくその存在から平和は始まるのだ。
ヴァレリー・トカチュク
ヴァレリー・トカチュク、24歳、ウクライナ人。プログラマーとして教育を受け、経済学の第二学位も持つ。22歳までウクライナで生まれ育ち、情報技術の分野で学び、働き始めた。戦争勃発後はしばらくドイツに住み、現在は日本の出雲市に在住。
プログラマーとして勤務し、ソフトウェア開発に従事。3DウェブコンストラクターやゲームAI開発など、思いついたことに幅広く取り組んでいる。仕事ではシステムのロジック、ソリューションの安定性、技術の実用的な価値を重視している。
言語学に情熱を持ち、ウクライナ語・ロシア語・英語・ドイツ語に加え、日本語とポーランド語も少々話せる。ウクライナ・ドイツ・日本での生活経験が世界観や仕事へのアプローチを形成した。人間とテクノロジーの相互作用、異文化コミュニケーション、アイデンティティと現代世界における平和といったテーマにも関心を持っている。
From Ukraine to Japan: Redefining Peace in a Divided World
Valeriy Tkachuk
What does the word “peace” mean when life flows unevenly? From early on, the word “peace” felt light and self-evident to me — something that needed no explanation or proof. It simply existed, like air or silence, which you don’t notice as long as it’s there. But over time, this word stopped being so light: my world, like that of many others, split into “before” and “after.” Life did not stop everywhere at once. For some it continued almost unchanged; for others it was cut short. It was then that I first felt that peace may not exist the same way for everyone.
I was in a place where life still held its familiar rhythm. I remember drinking coffee and underlining Japanese kanji, and my greatest concern that day was whether I would ever master the grammar — I never imagined that my definition of “problem” was about to be rewritten. At that time I was growing more and more interested in Japan and its culture, dreaming that one day I would be able to see Mount Fuji and look upon the cherry blossoms in bloom. It was a life that felt stable and predictable.
But that predictability did not last long. I felt how the world was changing, and how yesterday’s dreams suddenly collided with a harsh reality. It became clear that many things that had seemed reliable — familiar routines, plans, even the sense of safety — could disappear at any moment.
It was then that I first began to think about how fragile the balance of peace is. Before, it had seemed something stable and guaranteed, but now I saw how easily it depended on the decisions of individual people, and how difficult it can be to stop those decisions in time.
This realization did not arrive instantly and was not formed into clear words. It appeared in small things: in the news read between work tasks, in messages that did not always receive answers, in the feeling that ordinary actions were no longer neutral. I kept on living, but I more and more often caught myself thinking that this life was unfolding against the backdrop of something far larger and more troubling than my daily plans. Before, I had thought of peace like a windowpane: invisible, allowing me to look at the world. Now the glass had cracked. I can still see through it, but I am constantly aware of the cracks. I no longer simply look at the landscape; I look at the glass itself, wondering what pressure it can withstand before it shatters completely.
Silence, too, began to feel different. Before, it meant calm — the absence of alarming news, protests, emergencies. Now I caught myself thinking that silence is not always a sign of peace. Sometimes it means only a pause before everything changes again.
I often catch myself thinking: “Perhaps this is the best moment of this year” — when I see that the world around me is relatively stable. In such moments I especially value my life. But at the same time I try to protect this fragile balance — bearing in mind what might destabilize me or those close to me, avoiding that or helping others to avoid it. I take this as my own responsibility.
At the same time, this responsibility does not always look heroic. More often it shows itself as fatigue from constant vigilance, as a desire to sometimes return to that lightness when peace required no effort. But the very impossibility of returning fully to that state is, perhaps, the most important change. The awareness of peace’s fragility prevents me from forgetting about it even when things around me become relatively quiet again. It keeps me engaged, even when I want to step back.
Knowing that a certain peaceful period is ongoing now gives me the strength to keep moving forward. I understand that building peace across the whole world is beyond my reach as an individual. But making the world around me a little more attentive, a little safer and more humane — that is a task I can manage.
When peace stops being self-evident, it stops being a private matter. It connects personal life with decisions made far away from it, and makes you see your own role in that chain differently. At that moment, the thought of peace moves beyond an inner feeling and becomes a question of responsibility.
Today, peace for me is no longer a state or a guarantee. It is a constant attentiveness to what is happening nearby and to how my decisions affect others. Peace demands not calm, but presence. And perhaps it is from this presence that peace begins.
Valeriy Tkachuk
My name is Valeriy Tkachuk, I am 24 years old, and I am Ukrainian. By training I am a programmer, and I also have a second degree in economics. I was born and lived in Ukraine until the age of 22, where I studied and began working in information technology. After the war began, I lived in Germany for a time; now I live in Japan, in the town of Izumo.
I work as a programmer and am engaged in software development — 3D web builders, game development, and whatever else comes to mind. In my work I focus on the logic of systems, the stability of solutions, and the practical value of technology.
I have a passion for linguistics and can communicate in Ukrainian, Russian, English, German, and also a little Japanese and Polish. My personal experience of living in Ukraine, Germany, and Japan has shaped my worldview and approach to work. It also defines the topics that interest me outside my professional activity: the interaction of humans and technology, intercultural communication, questions of identity, and peace in the context of the modern world.
우크라이나에서 일본으로: 분단된 세계에서 평화의 재정의
발레리 트카추크
삶이 균일하게 흘러가지 않을 때, ‘평화’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어릴 때부터 나에게 ‘평화’라는 단어는 설명이나 증명이 필요 없는, 가볍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공기나 정적처럼 그냥 거기에 있었다——있는 동안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는 더 이상 그렇게 가볍지 않게 되었다. 나의 세계는,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졌다. 삶은 어디서나 동시에 멈추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는 거의 변함없이 계속되었고, 어떤 이에게는 갑자기 끊겨 버렸다. 그때 처음으로 평화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삶이 아직 익숙한 리듬을 유지하고 있는 곳에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일본 한자에 밑줄을 긋던 것이 기억난다. 그날의 최대 관심사는 언젠가 문법을 마스터할 수 있을까였다——’문제’라는 단어의 정의가 곧 다시 쓰여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일본과 그 문화에 점점 더 매료되어, 언젠가는 후지산을 보고 벚꽃을 바라볼 수 있기를 꿈꾸었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 예측 가능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계가 변해가는 것을 느꼈고, 어제의 꿈이 갑자기 냉혹한 현실과 충돌했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익숙한 일상, 계획들, 심지어 안전감조차——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때 처음으로 평화의 균형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안정적이고 보장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쉽게 개인의 결정에 달려 있는지, 그리고 그 결정을 제때 멈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가 보였다.
이 깨달음은 즉각적으로 오지 않았고 명확한 말로 형성되지도 않았다. 그것은 작은 것들 속에서 나타났다——업무 사이에 읽는 뉴스, 항상 답장이 오지 않는 메시지, 일상적인 행동이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는 느낌. 나는 계속 살아갔지만, 이 삶이 내 일상적인 계획보다 훨씬 크고 불안한 무언가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자주 들었다. 이전에는 평화를 창문 유리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보이지 않아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 이제 그 유리에 금이 갔다. 여전히 투과해서 볼 수 있지만, 금 간 것을 항상 의식하고 있다. 더 이상 단순히 풍경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유리 자체를 바라보며 완전히 부서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압력을 견딜 수 있을지 생각한다.
정적도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평온함을 의미했다——불안한 뉴스도, 시위도, 비상사태도 없는 상태. 이제는 정적이 항상 평화의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때로는 모든 것이 다시 변하기 전의 잠시 멈춤을 의미할 뿐이다.
주변 세계가 비교적 안정적일 때, ‘이번 한 해 중 가장 좋은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런 순간에는 특히 내 삶을 소중히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이 취약한 균형을 지키려 한다——나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것을 피하거나 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을 나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인다.
동시에 이 책임이 항상 영웅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더 자주, 그것은 끊임없는 긴장에서 오는 피로로, 혹은 평화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던 그 가벼움으로 가끔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상태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평화의 취약성에 대한 인식은, 주변이 다시 비교적 조용해질 때도 그것을 잊지 않게 한다. 물러서고 싶을 때도 계속 관여하게 만든다.
현재 어느 정도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인식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개인으로서 전 세계에 평화를 구축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임을 안다. 하지만 주변 세계를 조금 더 배려 깊고, 조금 더 안전하고 인간적인 곳으로 만드는 것——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평화가 자명한 것이 아니게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삶과 멀리서 이루어지는 결정들이 연결되고, 그 연쇄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르게 보게 만든다. 그 순간, 평화에 대한 생각은 내면의 감각을 넘어 책임의 문제가 된다.
오늘날 나에게 평화는 더 이상 상태도 보장도 아니다. 그것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주의와, 나의 결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의식이다. 평화가 요구하는 것은 평온함이 아니라 존재다. 그리고 아마도 바로 이 존재로부터 평화가 시작된다.
발레리 트카추크
발레리 트카추크, 24세, 우크라이나인. 프로그래머로 교육을 받았으며 경제학 제2학위도 있다. 22세까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살았으며, 정보 기술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을 시작했다. 전쟁 발발 후 한동안 독일에서 살았으며, 현재는 일본 이즈모시에 거주하고 있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소프트웨어 개발——3D 웹 컨스트럭터, 게임 개발 등 떠오르는 모든 것——에 종사한다. 업무에서는 시스템의 논리, 솔루션의 안정성, 기술의 실용적 가치에 집중한다.
언어학에 열정을 갖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로 소통할 수 있고 일본어와 폴란드어도 조금 한다. 우크라이나, 독일, 일본에서의 생활 경험이 세계관과 업무 접근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 다문화 소통, 현대 세계에서의 정체성과 평화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De Ucrania a Japón: Redefiniendo la paz en un mundo dividido
Valeriy Tkachuk
¿Qué significa la palabra “paz” cuando la vida fluye de manera desigual? Desde niño, la palabra “paz” me resultaba ligera y evidente — algo que no necesitaba explicación ni prueba. Simplemente existía, como el aire o el silencio, que no se nota mientras está presente. Pero con el tiempo, esta palabra dejó de ser tan ligera: mi mundo, como el de muchos otros, se dividió en “antes” y “después”. La vida no se detuvo en todas partes al mismo tiempo. Para algunos continuó casi sin cambios; para otros se interrumpió. Fue entonces cuando sentí por primera vez que la paz puede no existir de la misma manera para todos.
Yo estaba en un lugar donde la vida todavía mantenía su ritmo habitual. Recuerdo beber café subrayando kanjis japoneses, y mi mayor preocupación de ese día era si alguna vez podría dominar la gramática — nunca imaginé que mi definición de “problema” estaba a punto de ser reescrita. En aquel tiempo me interesaba cada vez más Japón y su cultura, y soñaba con poder ver el monte Fuji y contemplar los cerezos en flor. Era una vida que parecía estable y predecible.
Pero esa previsibilidad no duró mucho. Sentí cómo el mundo cambiaba y cómo los sueños de ayer chocaban de repente con una realidad dura. Quedó claro que muchas de las cosas que parecían confiables — las rutinas familiares, los planes, incluso la sensación de seguridad — podían desaparecer en cualquier momento.
Fue entonces cuando comencé a pensar, por primera vez, en lo frágil que es el equilibrio de la paz. Antes me parecía algo estable y garantizado, pero ahora veía con qué facilidad dependía de las decisiones de personas individuales y cuán difícil puede ser detener esas decisiones a tiempo.
Esta toma de conciencia no llegó de golpe ni se formó en palabras claras. Apareció en pequeñas cosas: en las noticias leídas entre tareas de trabajo, en mensajes que no siempre tenían respuesta, en la sensación de que las acciones cotidianas ya no eran neutras. Seguí viviendo, pero cada vez más a menudo me sorprendí pensando que esta vida transcurría sobre el telón de fondo de algo mucho más grande e inquietante que mis planes diarios. Antes pensaba en la paz como en el cristal de una ventana: invisible, que me permitía mirar el mundo. Ahora el cristal estaba agrietado. Todavía puedo ver a través de él, pero soy constantemente consciente de las grietas. Ya no me limito a mirar el paisaje; miro el cristal mismo, preguntándome qué presión puede soportar antes de romperse del todo.
El silencio también empezó a sentirse diferente. Antes significaba calma — la ausencia de noticias inquietantes, protestas, emergencias. Ahora me sorprendía pensando que el silencio no siempre es señal de paz. A veces significa solo una pausa antes de que todo vuelva a cambiar.
A menudo me sorprendo pensando: “Quizás este sea el mejor momento de este año” — cuando veo que el mundo a mi alrededor está relativamente estable. En esos momentos valoro especialmente mi vida. Pero al mismo tiempo intento proteger este frágil equilibrio — teniendo en cuenta lo que puede desestabilizarme a mí o a quienes me rodean, evitando eso o ayudando a evitarlo. Lo tomo como mi propia responsabilidad.
Al mismo tiempo, esta responsabilidad no siempre tiene aspecto heroico. Más a menudo se manifiesta como cansancio de la atención constante, como el deseo de volver a veces a aquella ligereza cuando la paz no exigía esfuerzo. Pero la imposibilidad misma de volver plenamente a ese estado es, quizás, el cambio más importante. La conciencia de la fragilidad de la paz impide olvidarla incluso cuando a mi alrededor vuelve a estar relativamente tranquilo. Me obliga a seguir comprometido, incluso cuando quiero distanciarme.
Saber que ahora transcurre cierta etapa de paz me da fuerzas para seguir adelante. Entiendo que la tarea de construir la paz en todo el mundo está fuera de mi alcance como individuo. Pero hacer el mundo a mi alrededor un poco más atento, un poco más seguro y más humano — esa es una tarea que puedo acometer.
Cuando la paz deja de ser evidente, deja de ser un asunto privado. Conecta la vida personal con decisiones que se toman lejos de ella, y te hace ver tu propio papel en esa cadena de otra manera. En ese momento, el pensamiento sobre la paz trasciende la sensación interior y se convierte en una cuestión de responsabilidad.
Hoy, la paz para mí ya no es un estado ni una garantía. Es una atención constante a lo que ocurre cerca, y a cómo mis decisiones afectan a los demás. La paz no exige calma, sino presencia. Y quizás es precisamente de esta presencia de donde comienza.
Valeriy Tkachuk
Me llamo Valeriy Tkachuk, tengo 24 años y soy ucraniano. Soy programador de formación y también tengo una segunda titulación en economía. Nací y viví en Ucrania hasta los 22 años, donde estudié y comencé a trabajar en el ámbito de la tecnología de la información. Tras el inicio de la guerra, viví un tiempo en Alemania; ahora resido en Japón, en la localidad de Izumo.
Trabajo como programador y me dedico al desarrollo de software — constructores web 3D, desarrollo de juegos y todo lo que se me ocurre. En mi trabajo me centro en la lógica de los sistemas, la estabilidad de las soluciones y el valor práctico de la tecnología.
Me apasiona la lingüística y puedo comunicarme en ucraniano, ruso, inglés, alemán, y también un poco en japonés y polaco. Mi experiencia personal de vivir en Ucrania, Alemania y Japón ha influido en mi visión del mundo y en mi enfoque del trabajo. También define los temas que me interesan fuera de mi actividad profesional: la interacción entre el ser humano y la tecnología, la comunicación intercultural, las cuestiones de identidad y la paz en el mundo contemporáneo.
З України до Японії: переосмислення миру в розколотому світі
Валерій Ткачук
Що означає слово «мир», коли життя плине нерівномірно? Ще змалку для мене слово «мир» було легким і зрозумілим — таким, що не потребує пояснень чи доказів. Воно просто існувало, як повітря або тиша, на яку не звертаєш уваги, доки вона є. Та з часом це слово перестало бути таким легким: мій світ, як і світ багатьох інших, розділився на «до» і «після». Життя не зупинилося всюди одночасно. Для когось воно продовжувалося майже без змін, для когось — обірвалося. Саме тоді я вперше відчув, що мир може існувати не для всіх однаково.
Я був там, де життя ще трималося за звичний ритм. Я пам’ятаю, як пив каву, підкреслюючи японські кандзі, і найбільше мене сьогодні хвилювало, чи зможу я колись опанувати граматику — я ніколи не уявляв, що моє визначення «проблеми» ось-ось буде переписано. У той час я дедалі більше цікавився Японією та її культурою, мріяв, що одного дня зможу побачити гору Фудзі і поглянути на цвіт сакури. Це було життя, яке здавалося стабільним і передбачуваним.
Але ця передбачуваність тривала недовго. Я відчув на собі, як змінюється світ, і як вчорашні мрії раптом стикаються з жорсткою реальністю. Стало зрозуміло, що багато з того, що здавалося надійним — звичні речі, плани, навіть відчуття безпеки — може зникнути в будь-який момент.
Саме тоді я вперше задумався, наскільки крихким є баланс миру. Раніше він здавався чимось стабільним і гарантованим, але тепер я бачив, як легко він залежить від рішень окремих людей і як важко буває зупинити ці рішення вчасно.
Це усвідомлення не прийшло миттєво і не було оформлене в чіткі слова. Воно з’явилося в дрібницях: у новинах, які читаються між робочими завданнями, у повідомленнях, на які не завжди знаходилися відповіді, у відчутті, що звичайні дії більше не є нейтральними. Я продовжував жити, але щораз частіше ловив себе на думці, що це життя відбувається на тлі чогось значно більшого і тривожного, ніж мої щоденні плани. Раніше я думав про мир, як про скло вікна: невидиме, що дозволяє мені дивитися на світ. Тепер скло тріснуло. Я все ще можу бачити крізь нього, але постійно усвідомлюю тріщини. Я більше не просто дивлюся на краєвид; я дивлюся на саме скло, розмірковуючи, який тиск воно здатне витримати, перш ніж розіб’ється остаточно.
Тиша теж почала сприйматися інакше. Раніше вона означала спокій — відсутність тривожних новин, протестів, надзвичайних подій. Тепер я ловив себе на думці, що тиша не завжди є знаком миру. Іноді вона означає лише паузу перед тим, як усе знову зміниться.
Я часто ловлю себе на думці: «Мабуть, це найліпший момент у цьому році», — коли бачу, що світ навколо мене відносно стабільний. У такі моменти я особливо ціную своє життя. Але водночас намагаюся берегти цю крихку рівновагу — зважаючи на те, що може вибити з колії мене або когось із близьких, уникаючи цього або допомагаючи уникнути. Я сприймаю це як власну відповідальність.
Водночас ця відповідальність не завжди виглядає героїчно. Частіше вона проявляється як втома від постійної уваги, як бажання іноді знову повернутися до тієї легкості, коли мир не потребував зусиль. Але саме неможливість повністю повернутися до цього стану і є, мабуть, найважливішою зміною. Усвідомлення крихкості миру не дає забути про нього навіть тоді, коли навколо знову стає відносно тихо. Воно змушує залишатися включеним, навіть якщо хочеться відсторонитися.
Знання про те, що зараз триває певний мирний етап, дає мені сили рухатися далі. Я розумію, що завдання побудувати мир у всьому світі недосяжне для мене як для окремої людини. Але робити світ навколо себе трохи уважнішим, трохи безпечнішим і людянішим — це завдання, яке мені під силу.
Коли мир перестає бути очевидним, він перестає бути приватною справою. Він пов’язує особисте життя з рішеннями, які приймаються далеко від нього, і змушує інакше дивитися на власну роль у цьому ланцюгу. У цей момент думка про мир виходить за межі внутрішнього відчуття і стає питанням відповідальності.
Сьогодні мир для мене — це вже не стан і не гарантія. Це постійна уважність до того, що відбувається поруч, і до того, як мої рішення впливають на інших. Мир вимагає не спокою, а присутності. І, можливо, саме з цієї присутності він і починається.
Валерій Ткачук
Мене звати Валерій Ткачук, мені 24 роки, я українець. За освітою я програміст, також маю другу освіту економіста. Народився і тривалий час, до 22 років, жив в Україні, де навчався та почав працювати у сфері інформаційних технологій. Після початку війни я певний час жив у Німеччині, зараз проживаю в Японії в містечку Ізумо.
Я працюю програмістом і займаюся розробкою програмного забезпечення — 3D веб-конструкторами, розробкою ігор та всім, що спаде на думку. У своїй роботі зосереджуюсь на логіці систем, стабільності рішень і практичній користі технологій.
Я захоплююся лінгвістикою та можу спілкуватися українською, російською, англійською, німецькою, а також трохи японською та польською мовами. Мій особистий досвід життя в Україні, Німеччині та Японії вплинув на моє бачення світу та підхід до роботи. Він також визначає теми, які мене цікавлять поза професійною діяльністю: взаємодія людини і технологій, міжкультурна комунікація, питання ідентичності та миру в умовах сучасного світу.